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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지사, "재정 골든타임 놓쳤다"…경기도 비상 재정체제 돌입

지방채 발행 한도 99.6%·취득세 30% 급감 직격탄…업무경비 삭감부터 세입구조 개혁까지 4대 처방 내놔

 

(비전21뉴스=정서영 기자) 경기도가 재정 위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강도 높은 비상 대응에 나섰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5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이 시간부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한다"고 밝혔다. 단순한 긴축 재정 방침이 아니라, 구조적 재정위기 상태임을 도정 최고 책임자가 직접 인정하고 근본적인 해법 마련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새 사업은커녕 기존 사업 유지도 힘들다"

추 지사는 이날 "최근 경기도의 재정상황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두고 과장이나 명분 쌓기라는 오해가 있다"고 전제한 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경기도는 신규 공약사업 추진은 고사하고 이미 진행 중인 사업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그는 민선8기 들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상당수 민생·필수사업의 예산이 12개월이 아닌 9개월 치만 편성돼 왔다는 사실을 취임 이후에야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심각한 문제는 공직사회 내부에서조차 재정상황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고, 심각성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추 지사는 "지금 손을 놓으면 2~3년 뒤에는 기존 채무 상환을 위해 또다시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더 늦기 전에 재정을 바로 세우고 도민의 삶과 경기도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고 이번 선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지방채 발행 한도 99.6%까지 육박…기금 5,588억 원도 전용

경기도의 재정난은 수치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경기도는 지난해 한 해에만 세 차례에 걸쳐 약 9,430억 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이는 발행 한도(9,460억 원)의 99.6%에 달하는 수준으로,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5월에는 특정 목적으로 조성된 기금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도록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조례를 개정했고, 이후 3차 추경을 거쳐 각종 기금에서 약 5,588억 원을 일반회계 등으로 끌어다 썼다. 남북교류·평화협력 사업을 위해 조성된 남북협력기금(384억 원)도 340억 원이 통합계정으로 이전되면서 잔액이 44억 원으로 줄었다.

 

추 지사는 "지방채 발행과 기금 전용으로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그렇게 하고도 올해 예산조차 온전히 편성하지 못한 '미완의 미생 예산'"이라며 "그 대가는 결국 민생예산 부실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인장기요양(약 1,234억 원), 산후조리비 지원(약 80억 원), 유·초·중·고 급식비 지원(약 548억 원), 시내버스 공공관리제 운영지원(약 291억 원) 등 다수 사업의 마지막 3개월치 예산이 편성되지 못한 상태다. 예산담당 부서에 따르면 올해만 약 7,700억 원 규모의 감액추경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추 지사는 "더 이상 끌어다 쓸 재원도, 위기를 미룰 여력도 남아있지 않다.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가리는 사이 재정을 바로잡을 골든타임마저 놓쳤다"고 진단했다.

 

취득세 의존 구조가 근본 원인…3기 신도시 세수 효과도 기대 이하

추 지사는 경기도 재정 구조 자체의 취약성도 짚었다. 경기도의 전체 예산은 약 41조 7천억 원에 달하지만, 정책적 판단에 따라 자체적으로 활용 가능한 재원은 약 3조 5천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복지사업, 국비 매칭사업, 시·군 조정교부금 등 이미 용처가 정해진 예산이다.

 

서울시와 달리 경기도는 지방소득세가 없고, 보통교부세를 받지 못하는 불교부단체이면서 도세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 거래에 좌우되는 취득세에 의존하고 있다. 2022년 약 11조 원이었던 취득세 수입은 올해 8조 원 수준으로, 약 30% 줄었다.

 

기대를 모았던 3기 신도시 개발도 세수 확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비율 확대와 LH 직접개발 방식으로 인해 당초 6,500억 원으로 예상됐던 취득세 수입 전망치는 2,300억 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반면 경기도는 교통·소방·기반시설 확충 등 신도시 개발에 따른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유치를 위한 전력·용수·교통망 확충에는 경기도가 행정·재정적 투자를 하지만, 정작 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법인지방소득세는 시·군에 귀속되는 구조적 불균형도 지적됐다.

지출 측면의 압박도 크다. 경기도 복지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49%를 차지하며,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머지않아 60%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2022년 이후 경기도 전체 인구가 약 30만 명 늘어나는 동안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그 두 배인 약 60만 명 증가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의 고령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6.8%로, 전국 평균(5.4%)을 웃돈다.

 

4대 비상조치 발표…"약자에게 고통 떠넘기지 않겠다"

추 지사는 이날 재정 정상화를 위한 4가지 비상조치를 함께 발표했다.

첫째, 도지사를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업무경비 등을 감액하고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을 즉각 시행한다. 추 지사는 "도지사인 저부터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둘째, 낭비성 예산의 편성과 집행을 전면 차단한다. 일회성·선심성 행사와 불요불급한 사업을 중단하고, 관행적으로 반복돼 온 연구용역·민간위탁·대행사업도 재평가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도민의 생명·안전과 취약계층 보호 등 반드시 필요한 예산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선을 그었다.

셋째, 참모조직을 재정비하고 실·국 및 공공기관의 조직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 공직 조직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넷째, 세입구조 정상화를 위한 제도개혁을 추진한다. 지출 축소만으로는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지방소비세 확충, 기업 유치에 따른 세수의 합리적 배분, 국고보조사업의 과도한 지방비 부담 개선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추 지사는 "재정위기가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닌 만큼 바로잡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과 고통이 따를 것"이라면서도 "그 고통을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삶에 떠넘기지 않겠다. 불필요한 곳에서 먼저 줄이고, 더 큰 책임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감당하는 공정한 재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의 어려움을 다음 세대의 빚으로 넘기지 않고, 더 나은 경기도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겠다"며 경기도의회와 31개 시·군의 협력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