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21뉴스) 평화누리길은 경기도 DMZ 접경 지역(김포, 고양, 파주, 연천) 4개 시군을 잇는 최북단 도보 여행길이다. DMZ 인근 철책선을 따라 걸으면서 분단 현실을 체감하는 것은 물론 뛰어난 자연경관과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길로도 유명하다. 2010년 개장한 평화누리길은 총 12개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길이는 약 189km 안팎이다. 김포 3코스, 고양 2코스, 파주 4코스, 연천 3코스로 구성돼 있다.
DMZ와 인접한 평화누리길은 사계절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계절별 색깔을 천천히 음미하며 걷는다’ 점에서 경기도는 ‘DMZ 사색(四色)하다.’라는 주제로 월별 가볼만한 평화누리길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4월을 앞두고 첫 번째로 꽃과 풍경이 어우러진 봄의 정취를 따라 걷기 좋은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적벽길’을 소개한다.
벚꽃과 적벽, 구석기 시간까지 잇는 평화누리길 11코스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평화누리길 11코스는 임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다. 고구려의 성곽과 고려의 기억, 전쟁의 흔적, 봄이면 강변을 따라 피어나는 벚꽃, 그리고 구석기 유적까지 한반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길이다. 이 길은 단순히 풍경을 걷는 길이 아니라 역사와 계절을 함께 건너는 여정이다.
고려의 기억이 서린 숭의전지
여정의 첫 관문은 숭의전지다. 이곳에는 고려 건국 이전, 왕건의 군대가 행군 중 샘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사람들은 이 터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다고 믿었다.
세월이 흘러 고려가 멸망한 뒤, 이성계는 고려 왕들의 위패를 배에 실어 임진강에 띄웠다. 그러나 위패를 실은 배는 떠내려가지 않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조선 왕조는 이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고려를 위로하고 정통성을 잇는다는 의미로 숭의전을 세웠다. 길의 시작부터 깊은 역사적 울림이 전해지는 이유다.
고구려 강안 방어선, 당포성
숭의전지를 지나면 당포성에 이른다. 이곳은 고구려가 신라·백제와 맞섰던 격전지이자,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천혜의 방어 거점이었다. 강을 끼고 형성된 성곽은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하며 한반도 북부 방어의 핵심 축을 이뤘다. 천 년이 흘러 이곳은 다시 전쟁터가 됐다. 6·25전쟁 당시 이 일대에서 벌어진 치열한 고지쟁탈전으로 수많은 유엔군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곳 미산리, 동이리 일대에는 희생된 이들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한 유엔(UN)군 화장장 시설이 들어섰다.
자연이 빚은 장엄한 병풍, 임진적벽
유엔(UN)군 화장장 시설을 뒤로하고 걷다보면 평화누리길 11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임진강의 적벽을 만난다. 수십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주상절리 절벽이 강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지며, 특히 해 질 녘 노을에 자줏빛 돌기둥 전체가 붉게 물드는 모습은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장관을 선사한다. 걷다가 점심이 생각난다면 임진교 다리를 지나 김치두부전골, 만두, 막국수 등 진상리 마을 맛집을 이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봄의 벚꽃길에서 만나는 임진강
평화누리길 11코스에는 4월에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있다. 임진교를 건너 강길을 따라 걷다 보면 1km 이상의 벚꽃터널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임진강변의 진상리 벚꽃길은 남한에서 가장 늦게까지 봄을 간직한 벚꽃길로, 보통 4월 20일 전후 절정을 맞는다. 혹시나 쉴틈없이 바쁜 일정으로 봄꽃 나들이를 놓쳤다면, 진상리 벚꽃길의 마지막 봄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구석기인과의 만남. 연천 구석기 축제(5.2.~5.5.)
봄의 끝자락인 5월, 연천에서는 또 하나의 시간이 열린다.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에 자리한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는 5월 2일부터 5일까지 구석기 문화를 주제로 한 연천 구석기 축제가 열린다. 이곳은 현생 인류보다 앞선 시대에 살았던 구석기인이 약 30만년 전 한반도에 최초로 정착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남긴 주먹도끼는 1978년 한 미군 병사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며 당시 동아시아에는 주먹도끼 문화가 없다는 모비우스 라인(Movius Line) 이론을 완전히 뒤집은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된다. 연천 구석기 축제 기간에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 걷기 여행에 ‘체험형 역사’라는 또 다른 결을 더한다.






